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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성이란 무엇인가 — 일간에서 갈라지는 열 가지 관계

글 신녀사주 편집부 · 작성 2026-07-29 · 수정 2026-07-29

사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식상이 강하시네요", "관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말이 반드시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상과 관성이 바로 십성(十星)이죠. 여덟 글자를 놓고 성향이나 진로를 이야기할 때 실제로 쓰이는 언어는 오행보다 십성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십성을 뽑는 계산 자체는 간단합니다. 일간과 다른 글자 사이의 오행 관계를 보고, 음양이 같은지 다른지만 확인하면 끝이죠. 어려운 건 그다음입니다. 왜 하필 일간을 기준으로 삼는지, 왜 다섯 관계를 굳이 열로 쪼갰는지, 거기에 붙은 아버지·배우자·자식 같은 육친 이름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이런 건 계산식이 답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십성 하나하나의 성향 풀이 대신, 십성이라는 체계가 어떤 논리로 짜였는지를 먼저 짚습니다. 뼈대를 잡아 두면 비견·겁재·식신·상관처럼 개별 십성을 볼 때 외울 것이 확 줄어듭니다.

왜 하필 일간을 '나'로 놓는가

십성은 태어난 날의 천간인 일간(日干)을 나로 놓고, 나머지 글자가 그 일간과 맺는 관계에 이름을 붙인 체계입니다. 여덟 글자 가운데 일간만 기준점이 되고 나머지 일곱 글자는 전부 상대역이 되죠. 그래서 같은 병화(丙)라도 갑목 일간에게는 식신이 되고, 임수 일간에게는 편재가 됩니다. 글자 자체에 십성이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누가 보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겁니다.

처음부터 일간이 기준이었던 건 아닙니다. 당나라 이허중(李虛中) 계열의 옛 방식은 태어난 해, 즉 연주(年柱)를 중심에 놓고 풀었다고 전합니다. 이것을 태어난 날 중심으로 옮긴 사람이 송대의 서자평(徐子平)이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명리를 자평명리라 부르는 것도 그 이름에서 왔죠. 『연해자평』이 자평의 체계를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십성론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준을 해에서 날로 옮긴 이유는 자리의 뜻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기둥은 각각 조상·부모·자신·자식의 자리로 배정되는데, 이를 뿌리와 싹과 꽃과 열매에 빗대 근묘화실(根苗花實)이라 부릅니다. 이 배정에서 자기 자신에 해당하는 자리가 바로 일주죠. 그중에서도 하늘의 글자인 천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나를, 땅의 글자인 지지가 내가 딛고 선 바탕을 뜻한다고 봐서 일간을 나로 삼았습니다.

먼저 생과 극, 방향이 다섯이다

십성은 오행의 생극에서 갈라지는 다섯 방향이 먼저이고, 음양은 그다음입니다. 일간을 가운데 세워 놓으면 다른 글자가 놓일 자리는 다섯 개뿐이죠. 나와 같거나, 내가 생하거나, 내가 극하거나, 나를 극하거나, 나를 생하거나입니다. 여섯 번째 방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다섯을 순서대로 비겁·식상·재성·관성·인성이라 부릅니다.

방향의 출발점이 언제나 일간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재성과 관성은 둘 다 극(剋) 관계인데, 화살표가 나에게서 나가면 재성이고 나에게로 들어오면 관성이죠. 식상과 인성도 마찬가지로 둘 다 생(生) 관계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초보자가 십성을 헷갈리는 지점은 대개 이 화살표 방향 하나입니다.

왜 내가 극하는 것이 재물이 되는지도 방향으로 설명합니다. 옛사람들은 내가 눌러서 부릴 수 있는 대상, 즉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을 재(財)로 봤습니다. 반대로 나를 눌러 오는 힘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법이나 조직, 직책 같은 관(官)으로 봤죠. 재물이 좋고 관이 나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힘의 방향에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음양이 같으냐 다르냐가 열로 가른다

다섯 방향은 음양이 같은지 다른지에 따라 각각 둘로 나뉘어 모두 열이 됩니다. 같은 '내가 생하는 오행'이라도 일간과 음양이 같으면 식신, 다르면 상관이 되는 식이죠. 열이라는 숫자는 다섯 곱하기 둘에서 나온 것이지 임의로 정한 게 아닙니다.

이름 붙이는 규칙에는 일정한 결이 있습니다. 재성과 관성, 인성에서는 음양이 다를 때 정(正), 같을 때 편(偏)을 붙여 정재·편재, 정관·편관, 정인·편인이 됩니다. 비겁과 식상만 정편 대신 비견·겁재, 식신·상관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씁니다. 이름이 어긋나 보이지만 음양 규칙 자체는 열 개 모두 같습니다.

음양이 다를 때 '바를 정'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과 양은 서로 끌어당기므로 그 관계가 유정(有情)하다고 보고, 같은 음양끼리는 밀어내니 무정하다고 봤죠. 그래서 정관은 나를 다스리되 순하게 다스리고, 편관은 같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자평진전』 「논음양생극」이 다루는 것도 이 배합의 이치입니다.

갑목(甲) 일간을 기준으로 본 십성 열 가지 — 천간과 지지 정기 기준
십성오행 관계음양해당 천간해당 지지
비견나와 같음(木)같음갑(甲)인(寅)
겁재나와 같음(木)다름을(乙)묘(卯)
식신내가 생함(火)같음병(丙)사(巳)
상관내가 생함(火)다름정(丁)오(午)
편재내가 극함(土)같음무(戊)진·술(辰戌)
정재내가 극함(土)다름기(己)축·미(丑未)
편관나를 극함(金)같음경(庚)신(申)
정관나를 극함(金)다름신(辛)유(酉)
편인나를 생함(水)같음임(壬)해(亥)
정인나를 생함(水)다름계(癸)자(子)

십성·십신·육신, 이름이 여럿인 까닭

같은 체계를 문헌에 따라 십성·십신(十神)·육신(六神)으로 달리 부릅니다. 『연해자평』 계열의 옛 문헌은 육신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뒷시대로 오면서 십신이나 십성이라는 이름이 굳었죠. 열 가지를 다섯 무리로 묶어 부를 때 무리 이름에 일간을 더해 여섯으로 셌다는 설명이 흔히 붙지만, 판본마다 묶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 육신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문헌마다 다르게 설명됩니다.

이름보다 중요한 건 옛 문헌이 십성에 길흉을 어떻게 붙였느냐입니다. 전통적으로 재(財)·관(官)·인(印)·식(食) 넷을 사길신, 칠살(편관)·상관·효신(편인)·양인 넷을 사흉신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자평진전』은 「논사길신능파격」과 「논사흉신능성격」이라는 두 편을 나란히 두어, 길신이라도 쓰임이 어긋나면 격을 깨고 흉신이라도 제대로 쓰이면 격을 이룬다고 못을 박았죠.

이 대목은 십성을 처음 배울 때 반드시 새겨 둘 만합니다. 상관이나 편관이라는 이름만 보고 나쁜 사주라 단정하는 건 원전의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십성은 좋고 나쁨의 표가 아니라 힘의 방향을 적어 둔 지도에 가깝습니다.

다섯 방향만 외우면 됩니다
나와 같다 → 비겁, 내가 생한다 → 식상, 내가 극한다 → 재성, 나를 극한다 → 관성, 나를 생한다 → 인성. 여기에 음양이 같으면 비견·식신·편재·편관·편인, 다르면 겁재·상관·정재·정관·정인이 됩니다. 열 개를 따로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지에서 십성을 뽑을 때 걸리는 문제

천간은 글자 하나에 십성 하나가 딱 떨어지지만, 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지 속에는 지장간(支藏干)이라 하여 천간이 두세 개 숨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인(寅) 속에는 무·병·갑이 들어 있어, 갑목 일간이 보면 편재와 식신과 비견이 한 글자 안에 함께 있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지장간 가운데 힘이 가장 센 정기(正氣)를 대표로 삼아 십성 하나만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표에서 인(寅)을 비견으로 적은 것도 인의 정기가 갑목이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餘氣)와 중기(中氣)를 아예 버리는 건 아니고, 월지가 무엇인지 따질 때나 합·충이 걸릴 때 다시 꺼내 봅니다.

더 까다로운 건 자(子)·오(午)·사(巳)·해(亥) 네 글자입니다. 지지 배열에서 자와 오는 각각 양과 음의 자리에 놓이는데, 정기로 보면 자의 본기는 계수(음), 오의 본기는 정화(음)라서 겉과 속의 음양이 어긋납니다. 그래서 임수 일간에게 자(子)가 비견인지 겁재인지가 유파마다 갈리죠. 이 문제는 문헌마다 다르게 보며,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정리된 적이 없습니다. 십성 표기가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다른 것도 대개 여기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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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친 대입은 어디까지 읽어야 하나

십성에 아버지·어머니·배우자·자식을 붙이는 육친 대입은 옛 사회의 가족 관계를 오행 논리에 얹은 것이라, 규칙 자체가 문헌마다 어긋납니다. 흔히 남자 사주는 재성을 아내로, 관성을 자식으로 보고, 여자 사주는 관성을 남편으로, 식상을 자식으로 봅니다. 인성은 어머니, 편재는 아버지로 배정하죠.

그런데 이 배정의 근거를 캐 보면 설명이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왜 편재로 보는지에 대해서만 해도 어머니를 극하는 자리라서라는 설명과, 나를 낳아 준 인성을 다스리는 자리라서라는 설명이 함께 전합니다. 자식을 남자는 관살로 보는 이유 역시 문헌마다 논리가 다릅니다. 애초에 처첩과 적서를 나누던 시대의 가족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진 틀이라, 오늘날의 가족 형태에 그대로 대응시키기 어려운 대목도 많습니다.

『자평진전』이 「논궁분용신배육친」이라는 편을 따로 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십성만으로 육친을 정하는 대신, 네 기둥의 자리(궁)와 십성을 함께 놓고 봐야 한다는 취지죠. 실제 상담에서도 "재성이 없으니 배우자가 없다"는 식의 한 줄 결론은 원전의 방식이 아닙니다. 십성의 육친 이름은 그 기운이 삶에서 어떤 종류의 관계로 드러나는지를 가리키는 비유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리 — 십성을 읽는 순서

십성을 처음 볼 때는 개수를 세는 것보다 순서를 지키는 편이 낫습니다. 먼저 일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다음 각 글자가 일간과 어느 방향으로 걸리는지 다섯 무리로 나눕니다. 그러고 나서 음양을 따져 정과 편을 가르고, 마지막으로 그 십성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봅니다. 같은 정관이라도 월지에 있는 것과 시지에 있는 것은 무게가 다르니까요.

그리고 어떤 십성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그 영역이 비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여덟 글자에 열 가지가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 없는 십성이 생기는 게 오히려 정상이죠. 없으면 지장간과 대운에서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함께 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열 가지를 하나씩, 비견부터 차례로 자세히 다룹니다.

참고 문헌

이 글은 전통 명리 이론을 정리한 자료이며 오락·교양 목적으로 제공됩니다. 건강, 법률, 투자, 진로에 관한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지 마시고 해당 분야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